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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0 [s] 가고싶은, 경주. (2)
  2. 2009.04.22 [scrap] 도란도란 대화가 흐르는 연초록 숲길 ‘청춘의 봄날’-영산강 따라가는 만춘의 여행 나주
  3. 2009.04.22 [scrap] 안개 덮인 영산강서 만난 ‘몽환의 봄날’ -만춘의 여행지 나주

[s] 가고싶은, 경주.


2006년 여름, 처음으로 호기심에 훌쩍 갔던. 경주-
2007년 여름, 도망치듯 떠낫던. 경주-
2008년 여름, 첨성대가 너무 그리워 훌쩍 갔던. 경주-

2009년 여름.
무엇을 했는지 모르게, 유난히도 더욱 뜨거웠던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경주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하지만,마음만은 첨성대로. 이미 그 연꽃가득한, 그 곳에. 가있다는것을.

올해는, 가을에. 코스모스 가득일때.
만나도록해.


Nikon D200 Sigma AF10-20 ,2008.08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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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 도란도란 대화가 흐르는 연초록 숲길 ‘청춘의 봄날’-영산강 따라가는 만춘의 여행 나주

도란도란 대화가 흐르는 연초록 숲길 ‘청춘의 봄날’
영산강 따라가는 만춘의 여행 나 주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전남 나주의 전남산림환경연구소 정문을 들어서면 우람한 메타세쿼이아가 줄지어 늘어서 있는 길을 만난다. 봄볕에 물이 오른 나무들이 이제 막 초록빛 새순을 내놓았다. 이 길에서는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나주의 불회사는 신록으로 가득한 산자락을 끼고 있다. 대웅전의 깨끗한 단청과 연초록의 단풍나무, 늘푸른 동백나무, 진초록의 편백나무들이 각기 농담을 달리하며 그림을 그려낸다.
# 백성이 사랑한 400년 전 나주목사

이 땅에 어찌 이런 벼슬아치가 있었을까. 전남 나주 읍성의 자취를 돌아보다가 400년의 시간을 건너온 이야기를 만났다. 백성들로부터 그야말로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던 고을 수령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처럼 정치인이나 관료들의 군림과 부정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청렴하고 근면했던 400년 전의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청량하게 다가온다.

나주는 흔히들 ‘천년 목사(牧使)의 고을’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목사란 기독교 성직자인 목사(牧師)를 뜻하는 게 아니라, 지방 행정 단위의 하나인 목(牧)을 다스리던 수령을 일컫는 말이다. 고려 성종(998년) 전국에 12목을 두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나주목이었고 이 나주목을 다스리던 직책이 나주목사다. 지금으로 치면 도지사와 군수의 중간쯤 벼슬이겠다.

나주목이 생긴 이래 1000년. 그 오랜 세월 동안 유일하게 목사로 두 번 부임한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조선 광해군 때의 유석증이다. 나주목사에서 물러나 암행어사로 부임했던 그는 9년 만에 다시 나주목사로 내려온다. 나주 백성들의 로비 때문이다. 첫 부임 때 유석증의 선정을 잊지 못한 백성들은 상소를 올려 ‘그를 다시 내려보내 달라’고 간청했다. 백성들은 십시일반으로 거둔 쌀 300석을 바치기까지 했다.

유석증이 재부임하자 이번에는 유임운동이 벌어졌다. 나주 사람들은 “유 목사를 나주에 계속 있게 해 달라”며 상소를 올리고 거둬 모은 쌀 2000석을 바쳤다. 유석증의 임기 동안 매년 유임운동이 벌어졌을 정도로 그에 대한 나주 백성들의 사랑은 절대적이었다. 당시 사정을 담은 광해군 일기의 한 대목을 들춰보자. “수령을 제수하는데, 모두 뇌물을 받았기에 서로 박탈을 일삼았다. 그러나 유석증은 청백하고 근신하여 잘 다스렸기 때문에 (백성들이) 이러한 청을 한 것인데, 백성의 마음 또한 감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유석증의 다스림이 어떠했기에 이렇듯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아쉽게도 그가 펼친 선정의 기록은 남겨진 것이 없지만, 백성들의 그를 향한 사랑만큼은 400년의 시간을 넘어 전해지고 있다. 나주목사 유석증의 이야기를 되새기기에는 시내 한복판 금계동의 나주목사 내아만 한 곳이 없겠다. 내아란 나주목사가 기거하던 살림채를 말하는데, 근래 들어 관광객들의 숙소로 개방했다.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던 유석증도 이곳에서 기거했으리라. ㄷ자 모양의 정갈한 내아 대청마루에 앉아 금성산 자락의 야생차로 만들었다는 명다원의 향긋한 차 한잔을 앞에 놓는다.

# 남도 땅 굽이굽이 영산강 따라

남도 땅을 굽이쳐 흐르는 영산강은 단연 ‘나주의 강’이다. 전남 담양에서 발원해 바다에 가닿기 전 광주며 함평, 무안을 감아 돌지만 영산강은 광주의 것도, 함평이나 무안의 것도 아닌 나주의 강이다. 애초에 ‘영산강’이란 이름도 1370년쯤 흑산도 사람들이 강물을 거슬러 뱃길을 따라 들어와 살던 곳을 영산현이라 부르면서 붙여진 것. 지금도 나주는 영산포를 끼고 영산강이 관통하는 평야의 중심 한가운데 있다.

영산강의 물길은 136㎞로 한강(498㎞)이나 금강(297㎞)에 비하면 보잘것없다. 그러나 영산강은 비옥한 나주평야를 만드는 생명의 원천이자, 문화의 교역로였다. 지금은 방조제로 막혀버리고 말았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뱃길은 목포항에서 강물을 따라 73㎞나 거슬러 올라갔고, 강줄기를 따라 열여섯개의 나루를 거느렸다. 영산포 일대는 일제강점기 무렵 번성했다. 목포항이 개항하고 일본 미곡상들이 등장하면서 영산포는 나주평야의 쌀을 실어 내가던 포구가 됐다. 그래서 영산동과 이창동 일대에는 일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건물들이 즐비하다.

목포 앞바다의 물길을 따라 들어온 배들이 닻을 내리던 옛 영산포구에는 지금 유채꽃이 만발했다. 남도 땅 어디든 유채꽃은 있지만, 영산강변의 유채꽃은 자그마한 섬들에 심어져 있어 운치를 더한다. 한창 절정을 향해 치닫는 유채꽃의 노란빛이 강물에 반영돼 어른거리는 모습은 더할 수 없이 매혹적이다.

이즈음 영산강변의 가장 빼어난 풍경은 이른 아침의 봄 안개다. 영산강에서 피어나는 짙은 물안개는 너른 나주평야를 뒤덮고, 마을을 빨아들이면서 낮은 땅을 향해 흐른다. 영산강변의 몽환적인 안개를 지켜볼 수 있는 특급포인트는 공산면 백사리 인근의 정자 금강정 뒤편으로 난 샛길을 따라 올라가는 강 언덕. 운이 좋아야 하겠지만 이른 아침 이곳에 오르면 발아래로 영산강을 따라 안개가 흐르는 선경을 대할 수 있다.

영산강은 이제 막 이삭이 패기 시작한 진초록의 보리가 물결치고 자운영이 보랏빛 융단처럼 깔린 들판을 굽이굽이 돌며 느릿느릿 흘러간다. 끝없이 펼쳐진 나주평야의 들녘에 늘어선 전봇대들이 소실점으로 사라져 가면서 마을과 마을을 잇는다. 전봇대가 잇는 마을에는 땅을 일구고 사는 순한 사람들의 집이 있다.

# 돌담길과 연초록 메타세쿼이아

강변에는 또 옛 선비들이 풍류를 누리던 누각이며 정자들이 즐비하다. 기록으로 보자면 영산강 전체 유역에 923개의 누정이 있었다고 했다. 누각이며 정자가 많기로 이름난 전남지역의 전체 누정이 1688개인데 이 중 56%가 영산강을 끼고 있었던 셈이다. 이는 아마도 영산강이 굽이쳐 흐르는 나주평야가 채워준 넉넉한 곳간 때문이리라.

나주의 누정 중에서 가장 풍류가 넘치는 곳을 꼽으라면 세지면 벽산리의 벽류정을 들 수 있다. 영산강의 지류인 금천을 끼고 들어선 벽류정은 느티나무 거목들이 호위하고 있는 봉긋한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사방을 둘러치며 마루가 놓여 있고, 그 가운데 방을 들였는데 마루와 기둥은 물론이거니와 벽까지도 모두 나무를 짜 맞춰 세웠다. 관리가 소홀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사방의 창호문을 열고 번쩍 들어올리면 진초록의 녹음과 언덕 아래 물가의 풍경이 모두 정자 안으로 와르르 들어온다.

나주에는 멋스러운 전통마을인 도래마을이 있다. 이곳은 15년 전까지만 해도 버스도 다니지 않던 오지 중의 오지였다. 이 마을은 한옥과 기와 돌담이 제법 멋스럽게 어우러졌다. 작은 못을 앞에 두고 기품 있게 앉아 있는 양벽정과 영호정을 지나 돌담길을 돌면 반들반들 윤이 날 정도로 정갈하게 다듬어온 풍산 홍씨 일가의 전통 가옥들을 만날 수 있다. 도래마을 주민들은 아직 외지사람들에게 익숙지 않다.

고풍스러운 한옥을 구경하러 들른 외지인들에게 친절하게 이쪽저쪽을 안내해주기도 하고 ‘민박을 치느냐’는 질문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작 ‘숙박요금이 얼마냐’고 물으니 우물쭈물 얼굴을 붉히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돈 받고 사람들을 재워줘 본 적이 없는 터라, 돈을 받는다는 게 영 불편하고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도래마을을 찾아갔다면 인근에 있는 전남산림환경연구소를 지나치지 말자. 연구소에 각종 나무와 꽃들을 심고 팻말을 붙여놓았으며 전망대와 전망데크 등을 갖춰놓고 있다. 무엇보다 이곳의 압권은 정문에서 연구소까지 이어지는 메타세쿼이아 숲길이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전남 담양의 것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곳도 못지않다. 숲길의 길이는 담양보다 짧지만, 폭이 좁아서 비밀스럽고 안온한 느낌은 더하다. 도열하듯 늘어선 메타세쿼이아 가지에는 연초록 새순이 이제 막 돋아 아름다운 색감을 빚어내고 있다.

# 짹짹짹 ‘아침교향곡’ 울리는 절집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주는 야생차로도 유명하다. 나주시 다도면의 절집 운흥사는 ‘한국 차의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가 출가했던 곳이다. 말년에 해남 대흥사의 일지암에서 다도삼매(茶道三昧)에 들었던 초의선사는 이곳 운흥사에서 차를 처음 접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도 운흥사 주변에는 야생차들이 자라고 있다.

운흥사가 들어선 자리는 해발 500m를 오르내리는 산의 부드러운 능선으로 사방이 막혀 있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사방의 숲에서 재잘거리는 새소리로 가득하다. 절집이 앉은 오목한 공간이 마치 울림통의 역할을 하는지 새소리가 깜짝 놀랄 정도로 크다. 절집이 끼고 앉은 산에는 새들이 많기도 한 모양이어서, 대웅전의 꽃문살을 쪼아대는 통에 문살을 비닐과 유리로 덧대놓았을 정도다.

운흥사가 귀를 즐겁게 하는 절집이라면 인근의 불회사는 빛이 아름다운 절집이다. 절집으로 드는 길에는 편백나무들이 울창한데, 하늘을 찌를 듯 솟은 편백숲 사이로 드는 빛에 반짝이는 단풍나무 잎의 색감은 황홀할 지경이다. 불회사 선방 앞에는 수백년 묵었을 법한 단풍나무가 신록의 잎을 달고 가지를 V자 모양으로 활짝 펼치고 있다.

웅장한 불회사의 대웅전은 한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풍모다. 날아갈 듯한 지붕 추녀의 끝을 우람한 기둥이 꼭 붙들고 있는 형국이다. 운흥사와 불회사로 드는 길에는 지금 산벚들이 한창이다. 신록과 어우러진 순백의 산벚 색감이 빼어나다. 절집 입구의 석장승도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 해학적인 모습을 한 툭 불거진 눈의 석장승 앞에 서면 슬며시 웃음이 배어 나오리라.

나주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로 종점까지 가서 산월나들목으로 나와 광주 제2순환도로를 탄다. 순환도로 요금소를 빠져나와 유덕나들목에서 우회전한 뒤 운수교차로에서 좌회전해 13번 국도를 타고 들어가면 나주에 가닿는다. 1번국도가 지나는 나주대교 부근은 차량통행이 많은 편이어서 출퇴근 시간에 제법 차가 밀린다.

묵을 곳 & 먹을 것

나주에서 최고의 숙소라면 바로 나주목사 내아다. 내아란 관사의 안채 격인 건물로 전라남도문화재자료 132호인데 지난해부터 일반인들에게 숙박장소로 공개하고 있다. 나주시청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어 가격도 저렴한 편. 방 크기와 위치에 따라 숙박요금은 5만~15만원선. 봄 햇살이 비껴드는 대청마루에 앉아 향긋한 차를 마시면 마음이 절로 푸근해진다. 나주호 인근의 골드스파리조트는 가족단위 여행자들에게 적당한 숙소.

나주의 먹을거리라면 영산포의 홍어회가 첫손으로 꼽힌다. 영산교 부근의 옛 영산포구 일대에는 홍어음식점들이 밀집한 ‘홍어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홍어1번지’(061-332-7444)가 알려진 곳. 적당히 삭혀 내놓는 홍어회는 코끝을 톡 쏜다. 홍어회나 홍어삼합은 2만~3만원, 홍어무침은 1만5000~2만원. 홍어 내장에다 보리 싹을 넣어 끓인 ‘보리애국’(5000원)의 칼칼한 맛도 놓칠 수 없다.

나주목사 내아 부근에는 나주곰탕집들이 즐비하다. 뽀얗게 끓여낸 다른 지역의 곰탕과 달리 나주곰탕은 마치 고깃국처럼 맑은 국물을 내놓는데 곰탕에 들어가는 고기도 푸짐하지만, 국물의 깊은 맛이 일품이다. 원조 격인 ‘나주곰탕 하얀집’(061-333-4292)이 가장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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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 안개 덮인 영산강서 만난 ‘몽환의 봄날’ -만춘의 여행지 나주


안개 덮인 영산강서 만난 ‘몽환의 봄날’
만춘의 여행지 나주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물안개가 밀려든 영산강의 이른 새벽 풍경. 햇살이 퍼지면서 안개는 금빛으로 빛나고, 강물 위로 그물을 걷으러 나온 배 한 척이 떴다. 영산강에 피어나는 봄 안개는 더할 수 없이 몽환적이다. 지금은 이렇듯 고요하지만 방조제가 세워지기 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열여섯개의 포구를 거느렸던 영산강은 물길을 따라 오르내리는 돛배와 발동선들로 북적였다.
영산강을 찾아간 것은 푸른 새벽 무렵이었습니다. 아직 해가 뜨기 전, 새벽 강이 밤새 길어 올린 안개로 강변은 온통 몽환의 세상이었습니다. 발아래 강줄기를 따라 낮게 가라앉은 안개가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끓어넘쳤습니다.

범람한 안개는 이제 막 이삭이 패기 시작한 청보리밭을 덮고, 마을을 덮고, 구릉까지 차올랐습니다. 강변의 세상이 온통 몽환의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풍경. 만일 여행의 목적이 오로지 ‘풍경에만 바쳐진 것’이라면, 이런 풍경 앞에서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이곳은 영산강이 너른 들을 관통해 흘러가는 전라남도 나주 땅입니다. 나주의 벌판을 흘러가는 것은 강물이나 안개만이 아닙니다. 영산강 물길을 따라 오랜 삶도 흐르고, 이야기로 가득한 역사도 흐릅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우물가의 처자로부터 버드나무 잎이 띄워진 물그릇을 받은 곳도 나주 땅이고, 400년 전 부임한 수령 유석증의 전설과도 같은 선정과 청렴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도 나주입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의 따스하면서도 서글픈 곡조가 만들어진 곳도 영산강변입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아픈 역사와 근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역시 영산강변의 영산포랍니다. 지금은 물길이 막히고 말았지만, 오래전에는 목포의 포구에서 돛을 높이 달아맨 배들이 나주의 영산포까지 거슬러 올라왔다지요.

영산강은 때로는 유순하게, 때로는 굽이치면서 세월을 건너고 물길을 굽이돌아 목포 앞바다로 흘러내려갑니다. 이제 구릉을 뒤덮던 배꽃들은 거의 다 지고 말았지만, 영산강변과 강 안쪽 자그마한 섬들에는 노란 유채꽃이 한창입니다. 절정에 이른 유채꽃의 노란빛이 너무도 선명해서 마치 노란 물감이 묻은 붓을 물통에 담갔을 때처럼 강물마저 노랗게 물들일 것 같습니다. 너른 나주평야에는 이제 막 이삭이 팬 청보리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보라색 자운영들도 한창입니다. 한새봉 아래 너른 강변에 심어놓았다는 양귀비들도 이달 말쯤이면 선혈처럼 붉게 피어오르겠지요.

봄날의 나주에는 여행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 전남산림환경연구소의 아담한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지금 새로 돋아난 연초록 신록으로 황홀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인근의 도래마을에서는 고색창연한 한옥과 담쟁이넝쿨이 돋아난 돌담의 정취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소 등처럼 부드러운 산들로 사방을 둘러친 고즈넉한 절집 운흥사에 들면 절집의 빈 공간을 가득 메우는 새소리 하나만으로도 귀가 즐거워집니다. 작은 고개 하나 너머 불회사 절집으로 드는 길에서는 몇 번이고 발걸음이 멈춰질 겁니다. 어둑한 편백나무 숲길 사이로 볕을 받은 단풍나무가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을 테니까요.

누군가로부터 1년에 단 한번만의 여행을 허락받았다면, 떠나야 할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은 온통 연초록으로 반짝이는 신록의 세상을 만날 수 있는 때입니다. 주어진 시간은 이제 보름 남짓. 어디로 가든 신록은 아름답겠지만, 만춘의 여행지로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나주를 권합니다. 나주 땅을 둘러보면서도, 아직 그곳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곧 다시 오고 싶어졌을 정도니까요.

나주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9042201032230024002&w=nv



*가야할곳이 많다는것은, 행복한것일까?
가도가도 또 가고싶은곳이 있다는것은 다행인것일까?
계절도 막지못하는 나의 이 역마살이 자꾸만, 어딘가로 다녀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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